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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1-08 11:58
보르헤스의 말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34  


보르헤스의 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윌리스 반스톤 / 서창렬 옮김 ㅣ 마음산책 ㅣ 2016  

                                                                                                                                작성자: 윤정선


난 의무적인 독서는 잘못된 거라고 생각해요.

의무적인 독서보다는 차라리 의무적인 사랑이나

의무적인 행복에 대해 얘기하는 게 나을 거예요.

우리는 즐거움을 위해 책을 읽어야 해요.

의무적인 독서는 미신 같은 거예요.

 

그리고 나는 늘 낙원을 정원이 아니라

도서관이라 생각해요.

  

보르헤스, 그를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것들은 그의 방대한 독서량, 언어에 관한 사랑, 미로, 또는 그가 맹인이라는 것,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메타픽션들이다. 그의 소설을 메타픽션이라 부르는 것은 매우 타당하다. 그 이유는 약 100권의 책을 짧은 단편 하나에 압축해 놓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 소설적 기능에 관한 논란이 있겠지만 메타픽션은 소설의 내러티브 방식보다는 끝없는 질문을 던지게 하는 갸우뚱을 가지게 한다.

 

나는 장편소설을 즐겨 있는 독자가 아니므로 장편소설 작가가 되기 어려워요.

모든 장편소설은, 최고 수준의 작품이라고 할지라도,

언제나 군더더기가 들어 있기 마련이죠.

반면에 단편은 내내 본질적인 것만을 다룰 수 있답니다.

일반적으로 장편소설은 내게, 적어도 작가로서

내게는 육체적 피로를 떠올리게 하는 것 같아요.

 

이 책, <보르헤스의 말>은 여든 살의 보르헤스가 미국 각지를 돌며 보르헤스 전문가 및 청중들 소위 보르헤스빠들 과 함께 한 인터뷰 내용이며 이를 통해 어떻게 100권 분량의 책의 내용을 단편 하나에 압축시킬 수 있는 지를 보르헤스의 성장 배경-어린 시절, 가족, 그가 사랑하는 작가들 과 그의 독특한 인생관 및 철학을 통해 엿볼 수 있다.

 

기분이 안 좋을 때면 나는 몇 년 뒤에, 어쩌면 며칠 뒤에 죽을 것이고,

그러면 이 모든 게 문제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진실로 위안을 얻는답니다.

나는 깨끗이 지워지길 고대하고 있어요.

하지만 내 죽음은 착각일 뿐이고 죽은 뒤에도 내가 계속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나는 몹시 슬프고 우울한 기분이 됩니다.

나는 정말 나 자신에게 넌더리가 나기 때문이지요.

물론 내가 계속 이어져도 보르헤스였다는 개인적인 기억이 없다면,

그 경우에는 문제가 되지 않을 거예요. 왜냐하면 나는 태어나기 이전에도 온갖 종류의

이상한 사람이었을 테지만, 그걸 다 잊어버리면 그 사실이 나를 괴롭히지 못하니까요.

존재의 유한성이나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면 난 그러한 것들을 희망적으로 기대하는 심정으로 생각해요. 나는 죽음을 탐낸답니다.

매일 아침 깨어나 , 내가 여기 있군. 다시 보르헤스로 돌아가야겠네라고

반복하는 걸 멈추고 싶어요.

매일 아침 난 이런 느낌이예요.

나는 거의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잠에서 깨면 늘 실망스러운 기분이랍니다.

내가 여기 있으니까요. 낡고 어리석은, 똑같은 게임이 계속되고 있으니까요.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해요. 정확하게 그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겐 수행해야 할 일들이 있죠. 그 가운데 하나는 온 하루를 살아야 하는 것이예요.

나는 내 앞에 놓인 그 모든 일상을 봐요.

모든 게 나를 피곤하게 하죠.

물론 젊은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느끼지 않을 거에요.

이 경이로운 세계에 돌아왔으니 참으로 기쁘구나, 라고 느끼겠죠.

그러나 나는 그런 식으로 느낀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젊었을 때는 특히 더 그랬던 것 같아요. 나는 이제 그냥 받아들여요.

지금은 눈을 뜨면 이렇게 말하죠.

또 하루를 맞닥뜨려야 해.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냥 넘어가요.

많은 사람들은 불멸을 일종의 행복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나와 다르게 느끼는 것 같아요.

어쩌면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르죠.

 

가장 냉철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우울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우울한 보르헤스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본다면 3차원적 인식만을 할 수 있는 인간적 한계에 대해 일부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권태로움일 것이다. 물리학자들에 의하면 이 우주는 아마도’ 10차원 내지 12차원으로 말려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인간은 10차원 내지 12차원의 질서의 법칙에 지배를 받고 있지만 3차원만의 인식을 한다. 우리는 시간 여행을 할 수 없거나 또는 폴이 니나가 잡혀 있는 마왕의 소굴로 떠나 돌아올 때까지 멈춰있었다 하더라도 그 사실을 인식할 수 없다. 우리는 4차원조차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폴과 친구들이 다녀온 마왕의 소굴이 10차원이상과 3차원과의 간극의 공간이다. 보르헤스가 느끼는 3차원적 공간의 지루함은 이 간극의 공간에 천착하며 부조리, 모순, 역설, 또는 놀라움, 광기, 두려움, 신의 뜻, 악마의 간계, 또는 신비로움, 경이, 꿈 등등 인간이 어리둥절하게 경험하는 간극에서 벌어지는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들을 다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복잡성은 놀라움(amazement)이라는 보르헤스의 정서로 정리되어 단 하나의 단어, 미로(maze)로 환원된다. 어떻게 들어가는 지도 기억하지 못한 채, 아니면 미로 안에서 태어났을지도 모르는 존재는 미로에서 헤매면 출구를 찾으러 애쓰는 이 두려움이 악몽이길 바라며 깨어나는 순간 또 다른 미로의 악몽 안에 갇혀 있음을 깨닫는다. 이 악몽의 반복이 보르헤스의 신비한 두려움이자 지루한 3차원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인 것이다.

보르헤스의 작품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철학의 메타포와 같다. 자아와 나비가 헷갈리는 장자의 호접몽을 같기도 하고 부처의 제자들처럼 세상을 시뮬라크르로 보는 듯 하며 때로는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우화로 옮겨 놓은 듯 하다.

 

보르헤스와 나

 

세상일을 겪는 사람은 다른 사람, 보르헤스라는 사람이다.

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거리를 걸으면서 이제는 기계적으로 잠깐씩

걸음을 멈추고 현관 아치와 철문의 격자 문양을 바라보곤 한다.

나는 우편물을 통해 보르헤스의 소식을 듣고 교수 명단이나 인명사전에서

그의 이름을 본다. 나는 모래시계, 지도, 18세기의 활판 인쇄,

커피 맛, 그리고 스티븐슨의 산문을 좋아한다.

보르헤스도 나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것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는 이것들을 한 배우의 특성으로 만들어버리는 허세스러운

방식으로 좋아한다.

우리의 관계는 적대적이라고 말한다면 과장일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이렇게 그냥 살아가야 보르헤스는

자신의 문학을 만들 수 있고,

이 문학이 나의 존재를 정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가치 있는 글을 몇 편 썼다는 것을 별 어려움 없이

인정한다. 그러나 그 글이 나를 구원할 수는 없다.

좋은 글은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고,

심지어 그의 것도 아니며,

언어나 전통에 속하기 때문이다.

나는 소멸된 게 명백한 운명이고, 단지 나의 어떤 순간들만이

그에게서 살아남을 것이다.

나는 왜곡하고 과장하는 그의 못된 습관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에게 모든 것을 주고 있다.

스피노자는 만물이 원래의 자신으로 존속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돌은 영원히 돌이고자 하며 호랑이는 영원히 호랑이고자 한다.

나는 나 자신이 아니라(나라는게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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