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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01-27 09:45
새로운 무의식 : 정신분석에서 뇌과학으로 <1>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540  

새로운 무의식 : 정신분석에서 뇌과학으로 <1>/
SUBLIMINAL : How your unconscious mind rules your behavior/
레오나르드 믈로디노프/까치글방/2015
작성자 윤정선
 
새로운 무의식 : 정신분석에서 뇌과학으로’. 이 혹하게 만드는 제목덕분에 흥미롭게 집어 든 이 책에 대해 읽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읽는 내내 딴지를 걸며 삐딱하게 굴다가 결국 책을 덮을 때는 그래서 뭐?’라는 결론을 내리고야 말았다. 이 책이 무슨 잘못을 그리 했다 말인가. 뉴사이언티스트 닷컴에서는 2012년 주목해야 할 10권의 책 중 한 권이라고까지 했는데. 거기다 믈로디노프는 스티븐 호킹과 위대한 설계를 공저한 유명 이론 물리학자가 아닌가. 그럼에도 이 책이 날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추측1. 정신분석을 디스하다.
 
새로운 무의식(new unconscious)이라는 용어 자체가 프로이트의 무의식과는 차별화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다. 무의식이 의식할 수는 없으나 인간의 인지, 정서, 행동 등의 의식상에 일어나는 모든 것의 뿌리라는 점에는 양자 간의 이견이 없으며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막강한 힘을 대중적으로 인식시킨 공로는 매우 크다. 그러나 새로운 무의식의 내적 힘들과 프로이트의 내적 충동들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거세 불안, 남근 선망 등의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뜨겁고 축축하며 갈망과 분노로 들끓고 환각적이고 원시적이고 비합리적인데 비해 새로운 무의식은 그보다 더 친절하고 부드럽고 현실에 매여 있다. 어떤 정신적 과정이 무의식적인 까닭은 뇌 구조상 의식이 접근하지 못하는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지 억압과 같은 동기적 힘에 붙잡혀 있기 때문은 아니다. 새로운 무의식의 접근 불가능성은 방어기제로도 불건전한 것으로도 간주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상으로 여겨진다.”
 
이 책은 뇌과학에서 다루는 무의식은 과학이지만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일종의 소설이다라고 시작한다. 어는 정도는 맞는 말이다. 왜냐하면 두개골을 깨지 않고 뇌의 메카니즘을 이해할 수 있는 신기술, 특히 fMRI의 획기적 발전은 최근에 와서야 이루어졌기 때문에 프로이트는 현상에 대해 직접적 관찰을 할 수 없었고 추론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새로운 무의식은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무의식에서 다루는 출생이후에 담론의 영향력에 대해 프로이트의 무의식이 더욱 더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이다. 거기에 비해 새로운 무의식은 오히려 명료하지 않다. 우리의 무의식은 이미 종(species)으로서 프로그램된 생물학적 무의식과 출생 이후에 형성되는 문화적 무의식이 상호 작용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대부분의 실험과 이론의 결론(정확히 이렇게 기술하고 있지는 않으나) 역시 결국 인간 삶 자체가 자기애적 강박을 정상으로 여기기 때문에 자기기만-진화적으로 생존에 유리하다-을 강화할 수 있는 허구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무의식의 과학이 필요하다는 논리로 귀결된다. , 무의식이 의식되지 않은 영역이라는 정의상 일치가 뇌과학이 다루는 무의식이 프로이트가 다루는 무의식을 또는 그 반대로든 서로 대체될 수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두 영역은 어느 지점 접점을 공유한 채 상호 작용한다. 지젝은 이렇게 얘기한다(<라캉 카페>, 새물결, 2013).
 
뇌과학의 무의식은 본능적으로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으로 프로그램된 영역이라면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본능이 아닌 충동에 관한 무의식이다. 충동이란 본능적인 것, 자연적인 것, 하지만 자연적으로 어긋나버린 것, 문화에 의해 왜곡되고 변형된 것이다. 그것은 자연 상태의 문화이다. 충동이 정신분석과 인지적 뇌과학 사이의 일종의 상상적 초점 또는 만남의 장소인 것은 이 때문이다. 즉 자기-추진적인 고리라는 역설이 그것으로 프로이트적 건물 전체는 여기에 기반하고 있으며 뇌과학은 은유적 형성물들 속에서 이에 접근하고 있지만 아직 이를 엄밀하게 규정할 수 없는 상태이다.”
 
왜 아기들이 배가 부름에도 손가락을 빠는가. 이것이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대상적 초과에 대한 초과적 애착이며 이 충동의 인위적 거세가 문화의 동력으로 전환된다는 뇌과학에서 말하는 끈적한 프로이트의 억압된 무의식이다.
 
추측2. 무의식의 기능을 생물학적으로 한정하다.
 
새로운 무의식은 우리를 부모에 대한 부적절한 성적 욕망이나 고통스러운 기억으로부터 보호하는 것 이상의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새로운 무의식은 진화의 선물로서 인간 종의 생존에 긴요하다. 뱀을 피하거나 불쑥 달려든 차를 피하거나 우리를 해치려는 사람에게서 도망칠 때는 무의식의 속도와 효율성만이 구원이다. 자연은 우리가 물리적 세계와 사회적 세계 양쪽에서 매끄럽게 기능하도록 만들기 위해 인식, 기억, 주의, 학습, 판단의 많은 과정을 의식적 자각의 바깥에 존재하는 뇌 구조들에게 위임했다.”
 
인간의 뇌를 거칠게 나누면 세 영역으로 구분된다. 가장 원시적인 영역은 파충류 뇌(reptilian brain)로써 먹기, 숨 쉬기, 심장박동과 같은 기초적인 생존 기능과 공격 또는 도망(fight-or-flight) 본능을 끌어내는 두려움이나 공격성과 같은 원시적 감정들을 담당하며 모든 척추동물에 있다. 두 번째 영역인 변연계(limbic system)는 동그란 고리형태를 이루는 좀 더 세련된 구조로 무의식적인 사회적 인식의 근원으로 사회적 감정 형성에 필수적인 뇌 체계를 가리키며 사이코패스의 뇌를 조사할 때 공통적으로 문제가 되는 영역이기도 하다. 이 영역은 반사적인 파충류적 감정을 강화하고 사회적 행동의 탄생에 중요하게 작용한다. 예를 들어 눈 앞에 곰이 나타날 때 인간이 반사적으로 취할 수 있는 자동 반응이 공격, 도주, 또는 죽은 척하기 등의 파충류 뇌의 작동이라며 이와 유사하게 사회적 행동으로써 아이가 부모의 양육방식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심리적 방어 역시 공격, 회피, 순종이다. 이 영역은 모든 포유류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구포유류 뇌라고도 한다. 세 번째 영역인 신피질(neocortex)는 신포유류 뇌라고 불리며 변연계 대부분을 덮고 있다. 신피질은 여러 겹-전두엽, 후두엽, 두정엽, 측두엽-으로 나뉘고 인간은 그 크기가 매우 크며 뇌 가소성이라는 환경에 따른 감각 자극에 따른 기존의 뇌 지도를 변경할 수 있는 영역이다(이것은 무한한 능력이 아니라 제한된 능력이다). 특히 인간의 전두엽은 다른 부위들과 불균형을 이룰 만큼 확장되었으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특징을 관장하는 영역이자 인간한테만 있는 자아’, ‘인지’, ‘언어를 생성하는데 관여한다. 왜 이 영역이 진화적으로 확장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르나(직립보행, 불 사용, 여성의 산도 축소, 미숙한 채 태어나는 아이, 150명이 통제 가능한 공동체의 크기 등등 복합적이라 한다) 5만년 전 지식의 나무돌연변이라는 가히 인지혁명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인간한테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위에 인용된 무의식의 영역은 뇌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영역에 해당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의 또 다른 무의식, 즉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세 번째 영역, 언어를 관장하는, 인간이 인간일 수 밖에 없는 영역인 것이다. 진화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에 의하면 (<빈 서판>, 사이언스북스, 2002) 인간은 두 가지 원인에 의해 살아간다고 한다. 하나는 궁극 원인으로써 유전자의 보존에 관련된 생존과 번식이고 다른 하나는 근인으로써 사랑, 우정, 예술, 명예, 권력 등 상징으로 대변되는 것들이다. 하지만 궁극 원인은 근인에 의해 감춰져 있고 인간은 근인을 위해 목숨을 버리기도 한다. 이 이야기를 유발 하라리의 버전으로 바꿔보자(<호모 사피언스>, 김영사, 2011)
 
인지혁명 이전에 모든 인간 종의 행위는 생물학의 영역에 속했다. 인지혁명 이후에는 생물학 이론이 아니라 역사적 서사가 호모 사피엔스의 발달을 설명하는 일차적 수단이 되었다.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유전자와 호르몬과 생물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개념과 이미지와 환상이 벌이는 상호작용 역시 고려해야 한다. 이것이 호모 사피엔스와 인류문화가 생물학의 법칙을 벗어났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는 여전히 동물이며 우리의 신체적, 정서적, 인지적 능력은 여전히 DNA에 의해 결정되며 행동과 능력의 기본 한계는 이런 생물학적 영역의 구속 내에서 일어난다. 하지만 이 영역의 한계는 극히 넓고 언어를 이용해 존재하지도 않은 상상의 이야기를 창조할 수 있는 인간은 이중의 실재 속에서 살게 되었다. 한쪽에는 강, 나무, 사자라는 객관적 실재가 있고 다른 한 쪽에는 신, 국가, 법인이라는 가상의 실재가 존재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상의 실재는 점점 더 강력해졌고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강과 나무와 사자의 생존이 미국이나 구글 같은 가상의 실재들의 자비에 좌우될 지경이다.”
 
새로운 무의식에서 말하는 영역은 우리가 관여할 수 없다. 이 책에서 다양하게 보여주는 실험들 역시 강제선택’(forced choice) -사람들이 스스로 답을 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마치 요행인 듯 정답에 도달하는 과정-에 관한 것들이다. 이미 우리의 뇌 안에 존재하는 프로그램은 우리가 그 메카니즘을 알든 모르든 똑같은 행동의 결과에 이른다. 즉 본성(nature)은 건드릴 수 없는 분야이며 생물학적 무의식으로써 백화점 한복판에 뱀이 절대 나타날 리가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음에도 눈앞에 불연 듯 아무 끈이라도 떨어지면 반사적으로 놀라며 피할 것이다. 반면 태어난 이후 각 개인에게 담론으로 끊임없이 세뇌시키는 환경(nurture)은 개인의 사회문화적 무의식-가치, 관습, , 편견, 선입관 등 으로 자리 잡아 자신이 소속된 사회의 구성원으로 생존할 수 있는 전략이 되기 때문에 이것 역시 변화하기는 용이하지 않다. 그러나 각 개인 내의 사회적 문화적 무의식-증상(개성 또는 주체성)으로 표현될 수 있는-과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사회 문화적 대타자의 담론(무의식)이 재맥락화 될 수 있는 가능성은 늘 열려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슨 짓을 써서라도 이야기를 꾸며내는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내 몸 안의 생물학적 프로그램은 5만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으나 내 머리 안의 담론은 늘 변하고 있으며 그 변화에 가장 큰 요인은 내가 소속된 사회의 패러다임과 외부 자극에 의한 변화와 맞물려 있다. 결국 세상의 이야기가 변하면 자신의 이야기도 바뀌고 자신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바꾸면 기존의 자신의 이야기가 바뀐다는 서사의 중요성이다. 믈로디노프도 여기까지는 언급했지만 재맥락화의 도구가 정신분석이 된다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대신 명상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하며 무의식이 생존의 선물이기는 하나 5만 년 전의 산물로써 자기기만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앞으로 그 유효성에 대해서는 살짝 의심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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