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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0-31 12:07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265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박찬국/ 21세기북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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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윤정선
 
인간은 존재로 진화하지 못한 존재자의 비극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라는 손대기도 두려운 두껍고 난해한 책을 우회적으로나마 접하고 싶다면 하이데거 전문가 박찬국 교수의 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가 이러한 욕망을 채워줄 것이다. 또한 하이데거의 용어를 노자나 장자의 용어로 바꿀 수 있다면 하이데거가 서양 철학자라기보다는 동양 철학자에 더 가깝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내가 누구일까라는 질문을 단 한번이라고 해 본적이 있다면 스스로 인간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거꾸로 말해 인간만이 자기 자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체라는 것이다. 왜 인간은 자기를 모를까? 그것은 인간은 에고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는 증명이다. 즉 내가 알고 있는 내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난 어떻게 구조화되어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이 모든 인문학의 역사일 것이다.
 
인간은 자신과 자신의 번식물의 생존을 위한 강력한 본능이 자동 프로그램 되어 있다. 하지만 그 자체를 노골적으로 추구하는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문명의 도구인 상징체계 , 권력, 명예, 학벌, 명성, 사랑, 예술, 외모 등-를 통해 간접적으로 성취한다. 생존과 상징체계를 밀접하게 연결시켜 살아가는 인간을 하이데거는 존재자라고 부른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또는 어느 정도의 욕심으로든 각 객체가 느끼는 상징체계의 결핍이 자신의 생존을 문득 또는 지속적으로 불안하게 만든다. 이것이 존재자로서의 인간의 고통이다.
 
현대 사회에서의 우울이나 허무에 대해 흔히들 이제 인간은 신을 잃어버렸다는 둥 영혼을 잃어버렸다는 둥 말하지만 역사를 통해 아주 소수의 인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인간들은 신이나 영혼, 또는 존재를 가져본 적이 없다. 과거의 사람들은 안 그랬는데 요즘 사람들은 어쩠다하는 식의 노스탤지어는 사고의 오류일 뿐이다. 인간의 의식은 진화한다. 과거의 사람들이 지금과 다른 이유는 그들은 생존에 직접적 노동을 해야 만이 살 수 있기에 허무와 공허를 느낄 시간적 물질적 여유가 없었다. 물론 현대 사회가 과거보다 훨씬 더 여유가 없다고 반발할 것이다. 그러나 그 여유 없음은 과거의 여유 없음과는 다르다. 현대의 여유 없음은 자본주의 사회가 인간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소비하고 소비하고 또 소비하라라는 새로운 초자아를 심어놓았기 때문이다. 소비해야 만이 좋은 대학에 가고 소비해야 만이 평균 이상 외모를 갖춰 좋은 직장에 입사하고 소비해야 만이 이웃에 부끄럽지 않고 이제부터는 네가 갖고 싶은 것은 반드시 가져라라는 여기저기서 들리는 음성은 주체가 되기 위해서도 소비해야만 한다는 강박적 사회가 정상이 된 것이다. 소비해야 할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해서 성장 발전 하고 훌륭한 성과를 내야만 한다. 타인을 들들 볶고 자신을 들들 볶아야만 된다. 이러한 들들볶음이 모든 분야에서 번아웃 신드롬을 낳고 급기야 우울과 허무의 모드가 사회 전반으로 전염된다. 한 쪽에서는 더욱 더 성장해야 하고 다른 쪽에서는 좌절하고 원망한다. 정말 먹고 살 수가 없어서일까. 인간은 빵만으로는 안돼서일까. 그럼 빵도 아니면 상징체계만 충족되면 될 것인가. 아니다. 빵만 충족되면 차라리 낫다. 불필요하게 과도해진 상징체계의 허세가 더 문제이다. 어쨌든 그 두 가지 다 인간을 충족시켜 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을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오히려 존재자로서의 인간이 비로소 존재로, 신으로, 영혼으로 진화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른 징조로 말이다. 다시 말해 허무와 공허가 상징체계의 허세를 이룰 수 없다는 좌절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상징체계의 허세야말로 무의미하다라는 통찰로 방향성을 틀 경우 이것은 우울이 아니라 자유, 해방이라는 존재의 경이로 향하는 하이데거가 말하는 시적 태도가 되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이런 시적 태도를 갖추기 위한 훈련으로 죽음에 맞서라고 한다. 상징체계의 결핍이 불러일으키는 인간 안에 내재된 생존하려고 애쓰는 자동 프로그램이 수시로 쏴대는 불안에 맞서라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래서 하루에 한 번씩 이반 일리치의 역할 놀이를 해 보라고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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